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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역사이야기

by 화시린 2022. 5. 16.

 

우리나라 역사중 임진왜란 당시 있었던 재밌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물론 굴욕의 역사도 있지만 그중에서 선조들의 지혜와 빛을 발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좋습니다. 

 

임진왜란 -도로묵이야기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임진년이 일어난 왜 즉 일본과의 전쟁을 뜻합니다.임진왜이 일어나기 전까지 조선은 아주 평화로운 시기였답니다.전쟁없이 살기 좋은 시기였지만 또한 전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그런데 조선과 다르게 그 시기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백여 년동안 전쟁을 거쳐서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일본의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오릅니다.그러고는 조선과 중국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백년동안 전쟁을 했으니 얼마나 전쟁 준비가 잘 되어 있겠습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일본 내부의 갈등을 외부와의 전쟁으로 돌리기 위해서 였다.그 시기 동북아시아 최강자였던 중국명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발판이었다.또 일본안에서 전쟁을 할때 자신들를 도왔던 일본 여러  영주들에게 조선의  영토를 나눠 주기 위해서 였다 등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이유가 무엇이였든 결론적으로 일본은 조선에게 명을 침략하기 위해 조선을 거쳐서 가야 하니 그 길을 내어달라 라고 요구를 하고  부산으로 쳐들어오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됩니다.육지를 통해 빠르게 진격해오는 일본에게 조선은 속구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결국 선조 임금님은 궁을 버리고 평안도 의주로 피난길까지 떠났답니다.그런데 전쟁중이니 아무리 임금님이어도 수라상이 부실할 수 밖에 없었겠죠? 어느 날 이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한 어부가 직접 생선을 잡아서 임금님께 바칩니다.선조 임금님은 생선의 맛을 보고 너무 맛있다고 하시면서 생선의 이름을 물으셨습니다."이 생선의 이름은 묵이옵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답니다.선조 임금은 생선의 맛에 비해 이름이 너무 하찮다고 하시며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답니다.나중에 전쟁이 끝나고 궁으로 돌아온 선조 임금은 다시 호화로운 수라상을 받았지만  묵이라고 불렸던 그때의 은어 맛이 그리워서 은어를 잡아오라고 명령합니다.그러나 다시 먹은 은어의 맛은 그때처럼 맛있지지가 않았답니다.선조 임금은 너무 맛이 없으니 "도로 묵이라고 불러라"라고 하셨답니다. 도로묵은 세월이 흐르면서 도루묵으로 발음이 바뀌였고  이 이후로 아무 소득 없이 헛수고 했을때 "말짱 도루묵이네"라는 표현으로 쓴답니다.

 

임진왜란- 이순신장군이야기

강강술래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승리를 이끌었던 이순신 장군은 일본의 2차 침입인 정유재란이 일어나기 전에 감옥에 갖히게 됩니다.이때 이순신 장군을 대신해 조선 수군을 이끈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150척이었던 판옥선이 12척이 남을 정도로 대패하면서  거의 전멸에 이르게 됩니다.이에 선조 임금은 다시 이순신 장군을 전라좌수사로  임명하고 이순신 장군은 남아있는 판옥선 12척과 군사 120명을 이끌고 명량해전을 준비하게 됩니다.조정에서는 12척의 배로 전쟁을 하는것이 무모해 보이니 권율 장군의 육군과 합쳐서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였는데 여기서 이순신 장군은 그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이렇게 말씀하시고 육군과 합치지 않으셨습니다.그리고 바로 강강술래를 이용하여 적을 교란 할 작전을 짰습니다.왜군이 진격해오는 시간에 맞춰서 남자 옷을 입은 여인들을 산에 오르게 했고 거기에서 강강술래를 추었는데 왜군이 멀리서 보니 그 여인들이 손을 잡고 만든 원형 대열을 군대로 착가하게 되었답니다.군사가 많은 것처럼 위장했던 강강술래,유속이 빠르고 소용돌이가 생기는 울돌목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작전 덕분에  12척밖에 되지 않는 판옥선을 가지고 130 여척의 왜군을 대파하는 큰 승리을 거둔 것이 바로 명량대첩입니다.

 

조선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 누구냐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님이 1,2위를 다투지 않을까 싶네요.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빛나는 지혜로 수군의 승리를 이끌었던 이순신장군은 참으로 영웅입니다.이순신장군은 어떻게 그런 열악한 환경속에서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아이디어 또한 적재적소 적용한 부분이 참으로 지금 봐도  너무나도 용기 있고 지략이 뛰어나다 고 할수 밖에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