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사람들은 사후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그 이야기를 해봅시다.
역사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높은 무덤을 고분이라고 부릅니다.무덤안을 장식하기 위해 천정이나 벽에 그린 그림을 고분벽화 라고 합니다.고분벽화는 옛날 사람들들의 그림 실력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의 사상과 종교 생활모습 등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세계적으로 남아있는 고분벽화는 많지 않지만 그중에 고구려와 이집트 이집트벽화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고구려 고분 벽화와 무덤
우리나라 고대 무덤중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은 끝에 총을 붙이고 그안에서 출토된 물건이나 벽화의 이름을 붙여서 무덤 이름을 짓습니다.예로 신라의 천마총에서는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안장이 출토되어서 하늘 천 말 마로 천마총 이름이 붙여진것이고 춤을 추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서 무용총이라고 이름 붙은 고구려 고분도 있습니다.고구려 고분에는 시신과 함께 껴묻거리를 함께 묻고 벽화를 그려 놓았습니다.이 벽화들을 통해서 그 당시 고구려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어떤 생활을 했는지 등으 알수 있는것입니다.무용총벽화에서는 사람이 크기가 다르게 그려져 있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신분의 차이에 의해서 크기를 다르게 그렸답니다.계급이 존재하던 사회였기때문에 신분이 높은 사람은 크게 신분이 낮은 사람은 작게 그려서 계급의 높고 낮음을 표현한것입니다.또한 고구려시대의 옷도 알수 있습니다.안악 3호분 벽화를 예로 든다면 부엌으로 보이는 곳에는 사람들이 커다란 솥을 놓고 음식을 하고 있고 차고를 보면 집주인이 타고 다녔을 것 같은 수레도 보입니다.푸줏간 갈고리에 고기들이 걸려 있는 모습도 볼수 있습니다.고구려 사람들도 지금처럼 고기를 걸어놓고 잘라서 먹었고 벽화속에 있는 수레를 타고 아녔구나 하는 생활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수산리 고분 귀부인도를 보면 처음에 있는 부인은 크게 그려져있고 그 뒤에 양산을 받쳐주는 사람은 작게 그려져 있습니다.즉 사람의 크기를 보고 고구려가 신분제 사회였구나를 알수 있습니다.덕흥리 고분벽화에서는 벽에 신화의 세계를 그려 놓았습니다.은하수와 베를 짜는 여자 소를 끄는 남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이름이 견우와 직녀로 불려졌습니다.이 그림에서 부터 고구려는 농사를 지을때 소를 이용했구나도 알 수 있습니다.
왜 죽은 사람의 무덤안에 이런 일상생활의 모습을 그려 넣었을까요 ?이것은 바로 죽은후에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었고 내세에서도 현세의 삶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바로 영혼이 벽화에 그려진 생활 모습을 보고 그 생활을 이어나갈거라도 생각한것입니다.심지어 천장에 별자리까지 그려놓았던 고분도 있었습니다. 또 지배계급은 살아 있을때 피지배계급 즉 노비를 부리면서 삽니다.그 생활이 사후세계에도 이어진다고 생각해서 지배계급이 죽었을때 살아있는 가족과 노비를 함께 묻는 순장 풍습까지도 있었습니다.고구려왕이 죽었을때 노비들과 후궁,장군을 함께 묻기로 했는데 장군은 사후세계에서도 왕을 지켜준다고 생각한것입니다.5.6세기 이후가 되면 고구려 고분벽화의 그림도 조금 변화하기 시작합니다.일상생활의 모습 대신 불교,도교의 종교적인 상징들이 그려지기 시작합니다.북쪽 방위신 현무,동쪽 방위신 청룡,서쪽 방위신 백호,남쪽 방위신 주작이 그려지면서 그 방위신들이 무덤 주인을 지켜준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면서 순장풍습도 없어졌습니다.
이집트 고분 벽화와 무덤
이집트에서도 비슷한 내세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이집트 사람들도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왕의 무덤인 피라미드에 여러 보물들을 묻었던것도 미라를 만들었던 것도 같은 이유랍니다.이집트 사람들이 사람들이 죽으면 영혼이 사람 몸을 떠라서 쉬고 있다가 미이라가 되어 부활하게 되면 영혼이 그 몸 속으로 들어가 산다고 믿었습니다.미래를 만들 때는 왼쪽 옆구리를 조금 갈라서 장기들을 꺼내 카노푸스의 단지에 넣고 심장만 남겨둡니다.천연소금을 시체안에 채우고 40일 동안 건조시킨 후에 물로 잘 닦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탄력을 살리기 위해 기름도 바릅니다.그리고 장기가 있던 몸안에 톱밥,나무잎,아마천 등으로 채워넣고 붕대로 감는겁니다.파라오왕은 영혼이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마스크를 만들어서 씌였는데 실제 얼굴 모습 그대로로 만들었다고 합니다.유명한 것이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입니다.투탕카멘은 18살 어린 나이에 죽어서 황금마스크에도 앳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묻으면서 사자의 서를 같이 넣어주었는데 사자의 서는 사후 세계를 무사히 통화하기 위한 안내서입니다.사람이 죽으면 자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가 죽은 자의 영혼을 심판의 저울로 데려갑니다.심판의 저울은 살아있을때 지은 죄의 무게를 재는 저울인데 저울 한쪽에는 죽은 자의 심장을 한쪽에는 정의의 신 마트의 깃털을 올려놓고 잽니다.만약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죄를 많이 지었다고 해서 악엉 머리에 사자갈기를 한 안무트가 그 심장을 먹어버리고 그 영혼은 소멸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리고 이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면 사후 세계의 신인 오시리스 앞으로 가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받아 미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오시리스는 초록색피부를 하고 있고 오른손에는 권능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왼손에는 생명을 상징하는 도리깨를 쥐고 있습니다.그러면 이 사후세계에서 영원한 삶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현실세계에서 아주 착하게 지내야 겠습니다.이집트 무덤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세네트라는 보드게임의 일종을 하는 모습,연회를 즐기는 모습,사냥을 하는 모습,죽은 뒤의 사자의 서 그림처럼 심판을 받는 모습 등의 벽화를 통해서 이집트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생활을 했고 사후세계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도 알게 됩니다.
한참 떨어져 있는 고구려와 이집트인데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이 거의 비슷합니다. 동양과 서양에서 비슷한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옛날 사람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위로를 이런 방식으로 하였나 봅니다.만약 계급사회에서 지배계층이 아닌 피지배계층이였다면 어떠했을까요? 사후에 대한 선택권도 두려움도 없었을까요? 순장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잔혹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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